[단독/심층기획] K-방역의 뿌리 영세업체들 ‘고사 위기’… 살생물제 승인제도, 이대로 괜찮나?

수억 원대 인증 비용·컨설팅 의존 구조에 중소기업 ‘줄도산’ 공포
법률 전문가들 “기존 승인권 박탈은 신뢰 보호 원칙 위배… 가처분 등 법적 대응 불가피”

- 환경부, 2026년 3월까지 제품 취하 압박… 거부 시 ‘직권취하·불법제품’ 낙인

 

대한민국 공공방역의 최전선을 지켜온 영세 살생물제(살충제·기피제 등) 업체들이 정부의 무리한 규제 전환으로 인해 존폐의 기로에 섰다. 환경부가 추진 중인 살생물제품 승인제가 현장의 수용 가능성을 무시한 채 시행되면서, 평생을 바쳐온 사업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영세 사업자들이 법원에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는 등 ‘생존권 수호’를 위한 단체 행동에 나섰다.

 

■ ‘안전’ 명분 아래 진행되는 사실상의 ‘시장 퇴출’ 통보

사건의 발단은 환경부 산하 화학물질안전원이 보건용 살충제 및 기피제 제조·수입사를 대상으로 보낸 ‘제품취하 이행 안내’다. 환경부는 「화학제품안전법」 개정에 따라 기존 안전확인대상생활화학제품으로 관리되던 품목들을 살생물제품으로 전환하며, 2026년 3월 31일까지 기존 제품의 취하 신청을 완료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만약 이 기한까지 업체가 스스로 제품을 취하하지 않으면 정부가 ‘직권취하’ 처리하고, 이후 유통되는 제품은 ‘불법제품’으로 간주해 사후관리 대상에 올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 중소기업의 절규 “인증 비용만 수억 원, 컨설팅사는 완장 찬 추심원”

현장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조치가 중소기업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살생물제품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독성, 효과·효능 등 방대한 시험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제품당 발생하는 시험 비용만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에 달한다.

특히 법률 전문가들은 제도 운영 과정의 기형적인 구조를 지적한다.

 

컨설팅 의존 심화: 시험자료 준비 과정에서 사실상 컨설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일부 업체들은 컨설팅사가 정부 지원을 빌미로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완장 찬 추심원’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중복 시험의 낭비: 이미 기존 제도 하에서 국가로부터 안전성을 승인받아 유통되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활용 기준 없이 똑같은 시험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것은 명백한 행정력과 비용의 낭비다.

■ 법조계 “기존 승인 지위 박탈은 위헌적 요소… 제도 연착륙 시급”

법률 대리인인 김라온 변호사(법률사무소 김라온)는 의견서를 통해 “새로운 승인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간 내 제품 취하를 강요하는 것은 기존 승인 지위를 사실상 박탈하는 행위”라며, 이는 헌법상 ‘신뢰 보호의 원칙’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도의 한계는 이미 자인된 상태다.

 

낮은 승인율: 올해 말까지 유예가 종료되는 품목 중 승인 신청된 1,000여 건 중 절반 이상이 반려되거나 취하되었으며, 완료 예정 건수는 현저히 낮다.

인력 및 기간 부족: 국립환경과학원 측조차 EU 대비 승인유예기간이 3분의 1 수준으로 짧고 평가 인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며 제도적 유연성 확보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 “방역 주권 포기할 것인가, 국내 산업 육성할 것인가”

영세업체들은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국민을 모기나 해충으로부터 지켜온 방역의 역군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환경 규제를 도입할 때 자국 강소기업들의 기술적·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 전환을 지원하듯, 정부도 ‘K-방역’의 뿌리를 고사시켜서는 안 된다.

 

환경부는 중소기업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비정상적 규제’를 정상화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압박이 아니라 ▲기존 승인자료의 최대한 활용 ▲경과기간의 현실적 연장 ▲실질적인 비용 지원이다.

“안전을 위해 기업이 죽어야 한다면, 그 안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원의 가처분 판단과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대한민국 방역 생태계를 살릴 마지막 열쇠다.

 

한국소통투데이 양호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