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섯 살 봉수는 마당의 감나무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아들 성민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아버지, 뭘 그렇게 보세요?" "저 감. 아직 덜 익었어. 억지로 따면 떫어." 성민은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어떠셨어요?" 봉수는 잠시 생각했다. "덜 익은 감 같았지. 억지로 뭔가 해보려 했고, 모질게 살았어. 쓸데없이 아등바등했어." "지금은요?" "지금은..." 봉수는 미소를 지었다. "홍시가 좀 되어가는 것 같아. 부드러워지고, 달아지고." 성민은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 처음으로 감나무의 홍시처럼 보였다. 충분히 익어서, 저절로 달아진. "아버지, 저도 빨리 홍시가 되고 싶어요." 봉수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두르지 마. 때가 되면 돼."
새벽 다섯 시 반, 서른 살 윤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은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해 주중에는 아버지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첫날 아침, 윤호는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 두부, 요구르트, 견과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버지, 이거 다 어디서 났어요?" 아버지가 주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내가 샀지. 아침은 잘 먹어야 해." 윤호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 혼자 요리하세요?" "응. 어머니 가고 나서 배웠어. 처음엔 계란 프라이도 못 했는데 이제 제법 해." 아버지는 계란을 깨고, 두부를 썰고, 견과류를 한 줌 담았다. 채소도 작게 썰어 볶았다. 윤호는 아버지가 차린 밥상 앞에 앉았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균형이 잡혀 있었다. "아버지, 이게 완벽한 아침이에요." 아버지가 빙긋 웃었다. "하루가 이 밥상에서 시작되거든. 시작을 잘 해야 하루가 잘 돼."
수요일 아침, 지하철에 탄 민호는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를 무심코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우산도 없이 왜 이렇게 비를 맞았을까. 육안으로는 그냥 우산을 챙기지 않은 부주의한 할머니였다. 그러나 민호는 가방을 열어 여분의 수건을 꺼냈다. "할머니, 이거 쓰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울었던 흔적이었다. "고마워요."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어디 가세요?" "병원이요. 영감이 오늘 수술이라." 민호는 그제야 이해했다. 빗속을 우산도 잊고 달려온 마음이 보였다. 비는 그 마음을 적셨을 뿐이었다. "잘 되실 거예요." 할머니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내리면서 생각했다. 육안으로는 그냥 젖은 할머니였는데, 심안으로 보니 사랑하는 사람 곁을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요양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입소자 박 할머니는 올해 아흔아홉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주 2회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 온 영양사 다빈은 처음에 걱정했다. "아흔아홉 살이신데 삼겹살이 괜찮을까요?" 담당 의사가 말했다. "할머니는 평생 돼지고기 드셨어. 혈관도 깨끗하고, 혈압도 정상이야. 억지로 바꿀 이유가 없어." 다빈은 직접 할머니에게 여쭤보았다. "할머니, 돼지고기를 좋아하세요?" 할머니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게 보약이야! 황사 많을 때는 더 먹어야 해. 몸속에 더러운 것들을 밖으로 밀어내거든." 다빈은 놀랐다. 그 말이 이론적으로도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오래 사셨구나." "그것만은 아니지." 할머니가 웃었다. "웃으면서 먹었으니까."
식품영양학과 교수 한 박사는 연구실에서 논문 한 편을 읽으며 눈이 동그래졌다. "영국에서 고추장이 항암 효과가 있다고?" 동료 연구원 지현이 다가왔다. "저도 봤어요. 캡사이신이 발효 중에 항암 물질로 변환된다는 거잖아요." 한 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매일 고추장 드셨어. 여든넷인데도 엄청 건강하시거든." "그게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조상들이 고추장 담그고, 된장 담그고, 간장 담그고. 그게 다 과학이었던 거야. 실험실이 없어도 수천 년 동안 몸으로 증명한 거지." 지현이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 우리 연구 주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한국 전통 발효식품 전체 연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한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논문을 덮었다. 밥상 위의 진짜 과학이 이제 막 세상에 알려지고 있었다.
여든두 살 어머니 옥자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혼자 일어났다. 딸 수경이 "엄마, 늦게 일어나셔도 돼요"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내 시간이 있어." 옥자는 천천히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방을 정리하고 작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아침 된장국을 끓였다. 수경은 어느 날 물었다. "엄마, 혼자 사시면서 이렇게까지 차려입으셔야 해요? 편하게 계시지." 옥자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어. 세수 못 하고, 옷 못 입고, 밥 못 먹으면 그때부터 진짜 늙는 거야." 수경은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머니의 아침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 흔들리지 않는 작은 품격이, 어머니를 어머니답게 지켜주고 있었다.
예순여덟 살 광민은 아내의 치매 진단을 받은 날부터 걷기 시작했다. 의사가 말했다. "치매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규칙적인 걷기입니다. 지금 시작하세요." 광민은 그날 저녁 아내의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를 두 바퀴 돌았다. 아내는 걷는 것이 왜인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일 년이 지났다. 광민과 아내는 매일 아침 만 보를 걸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걸었다. 아내의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악화되지도 않았다. 이웃 주민이 물었다. "어르신들 매일 걸으시던데, 힘드시지 않아요?" 광민이 답했다. "힘들죠. 그런데 안 걸으면 더 힘들어져요. 걷는 한 우리한테 내일이 있어요." 아내가 광민의 손을 꼭 쥐었다. 말은 없었지만 충분했다.
요리 연구가 채원은 촬영 전날 시장에서 콩나물 한 봉지를 샀다. 보조 스태프 은서가 콩나물 손질을 하며 뿌리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은서야, 잠깐." "네? 뿌리 떼야 하지 않아요?" "아니. 뿌리에 해독 성분이 제일 많아. 그냥 두자." 은서는 신기한 듯 물었다. "그럼 왜 다들 뿌리를 떼요?" "보기 싫어서, 또는 식감이 별로라고 해서.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걸 버리는 거야." 채원은 콩나물국을 끓이며 설명했다. "치매 예방에도 좋고, 장 건강에도 좋고, 여성 건강에도 좋아. 특히 뿌리 쪽이 그 성분이 가장 진해." 촬영이 끝난 뒤, 스태프들이 콩나물국을 한 그릇씩 마셨다. 은서는 뿌리를 건져 먹으며 말했다. "어? 이 부분이 더 고소하네요." 채원이 웃었다. "그게 진짜 맛있는 부분이야. 버리면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에 참 많아."
여름 방학에 시골 할머니 집을 찾은 대학생 지호는 뒤뜰에서 커다란 항아리들을 발견했다. "할머니, 이게 다 뭐예요?" "된장독이지. 저건 올해 담근 거고, 저건 삼 년 묵은 거야." 지호는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았다. 구수하고 깊은 냄새가 올라왔다. "맨날 된장만 드시잖아요. 다른 것도 드시지." 할머니는 웃었다. "된장이 보약이야. 네 엄마 낳고 내 몸이 쉽지 않았는데 된장국이 살렸어. 암도 막아준다고 하잖아." "정말요?" "그럼. 우리 마을 오래 사신 분들 다 된장 많이 드셨어. 비싼 약보다 이 된장이 더 나아." 지호는 저녁 된장찌개를 한 그릇 가득 먹었다. 할머니가 옆에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더 먹어. 이게 진짜 보약이야." 그날 이후 지호는 된장찌개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밥상 위의 가장 소박하고 가장 강력한 명약.
아침 여섯 시, 미영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으로 흐린 하늘이 보였다. 소나기 소식이 있다고 했다. 달력을 보니 6월 30일이었다. 1월 1일 새해 다짐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이 지났다. 올해 목표가 뭐였더라. 일기장을 펼쳤다. '매일 걷기, 엄마한테 자주 전화하기, 영어 공부 다시 시작하기.' 미영은 조용히 체크해보았다. 걷기는 반은 했다. 엄마한테는 예상보다 자주 전화했다. 영어는 시작만 하고 멈췄다.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다. "하반기가 있잖아."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영은 일기장에 새 목표를 적었다. 더 짧고,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하루가 또 선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