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나란히 자랐다. 크기도 비슷하고 굵기도 비슷했다. 어느 해 가을, 두 목수가 찾아왔다. 한 명은 대도시에서 온 대목수였고, 다른 한 명은 이웃 마을의 소목수였다. 대목수의 손을 탄 소나무는 오래된 한옥 대청마루의 기둥이 되었다. 수백 년을 버티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탱했다. 소목수의 손을 탄 소나무는 창고 문짝이 되었다가 몇 해 못 가 썩어 없어졌다. 소나무의 잘못이 아니었다. 만남이 운명을 갈랐다. 사람도 그러하다. 어릴 적 어떤 선생님을 만났느냐, 청년 때 어떤 친구와 어울렸느냐, 힘든 시절 누가 곁에 있었느냐 — 그 만남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축물을 짓는다. 즐거운 휴일,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따뜻하게 바라보자. 그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비행기 안, 김포행 탑승을 기다리며 그녀는 오래전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을 떠올렸다. 미션트립으로 찾아간 그 마을에는 학교도 없었고 제대로 된 집도 없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길을 뛰어다녔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 화음은 완벽했고, 그 눈빛은 무엇보다 빛났다. 풍금도 피아노도 없었다. 오직 목소리와 박수와 발구름 소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노래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다. 눈물이 났다. '어떻게 저런 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 그 물음이 가슴 속에 남아 씨앗이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도 그 아이들의 노래가 귓가에 울렸다. 언젠가 돌아가리라,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더 넓은 음악의 세계를 열어주리라. 기분 좋은 아침, 그 꿈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했다. 한 사람은 항상 불평이 많았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을 저렇게 할까. 저 방식은 왜 저럴까." 그는 늘 차이점을 먼저 보았고, 매일 아침 출근이 고통이었다. 다른 사람은 달랐다.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를 만나도 "저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과도 공통점 하나를 찾으려 애썼다. "우리 둘 다 커피를 좋아하는군. 우리 둘 다 퇴근 후 걷기를 즐기는군." 10년 후, 두 사람의 삶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불평 많던 사람은 여전히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나이만 먹었을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공통점을 찾던 사람은 다양한 인연들 속에서 성장했고, 그의 곁에는 늘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달팽이가 산을 넘듯, 그는 느리지만 정도(正道)로 끝까지 걸었다. 그 걸음이 가장 아름다운 최후의 승자를 만들었다.
욕심이 많은 농부가 있었다.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름에는 더 많은 수확을 바라고, 가을에 곳간이 가득 차면 내년에는 두 배를 원했다. 이웃이 잘 되면 배가 아팠고, 자신이 잘 되어도 더 잘 되지 못한 것이 분했다. 어느 해 가을, 풍년이 들어 곳간이 넘칠 정도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저 마을은 우리보다 더 많이 거뒀다더군." 그 말을 듣던 늙은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얘야, 반쯤 찬 술잔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아느냐. 가득 찬 잔은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엎질러진다." 농부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 그는 처음으로 밭 일부를 쉬게 했다. 땅에게도 쉬는 시간을 주었더니 다음 해 수확은 더 풍성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그해 가을 그는 처음으로 진짜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꽃이 피는 것도 좋지만, 질 때를 알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열매의 기쁨을 안다. 반복(半福)의 지혜는 모자람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충분함을 발견하는 행복의 기술이었다.
마을에 두 노인이 있었다. 한 명은 일흔 살로, 항상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며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의 집은 늘 시끌벅적했지만, 사람들은 그와 있으면 어쩐지 피곤함을 느꼈다. 다른 한 명은 여든 살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한마디 할 때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그는 아무리 어린 아이의 말도 끝까지 들었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말할 줄 알았다. 젊은이 하나가 두 노인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나요?" 첫 번째 노인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 들려주었다. 두 번째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나도 배우는 중이야." 젊은이는 집으로 돌아오며 두 번째 노인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새벽 강가에 홀로 나는 새처럼,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그 노인의 눈빛은 놀랍도록 맑고 깊었다. 성숙이란 완성이 아니라 끝없이 비워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날 젊은이는 처음으로 이해했다.
그는 젊은 시절 항상 "쓸모 있는 사람"과만 어울렸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힘 있는 동료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현명한 처세라 믿었다. 힘없는 후배나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은 자신과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중년에 갑작스러운 회사 구조조정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임원들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침묵뿐이었다. 사무실 밖의 인맥은 거의 없었다. 직장이 전부였던 그에게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10년 전 그가 무심코 밥 한 끼를 사줬던 후배였다. "선배님, 제 친구 회사에서 사람을 찾는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 그 작은 인연이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에 진심으로 잘하는 것, 어렵고 힘없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 것 — 그것들이 언젠가 돌아온다는 것을. 진짜 인맥은 명함 케이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오간 기억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그녀는 오랫동안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무뚝뚝했고, 직장 동료는 그녀를 무시하는 것 같았으며, 세상은 늘 자신에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굳어있는 자신의 표정이 싫었고,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낯설었다. 어느 가을 저녁, 그녀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한 노인을 보았다. 작은 화분 하나에 물을 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노인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 장면이 왜인지 가슴을 쳤다. "저분은 저 작은 꽃에 저렇게 기뻐할 수 있구나." 그날 밤 그녀는 노트를 꺼내 오늘 감사한 것을 써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하나 썼다. "오늘 따뜻한 밥을 먹었다." 그다음 날도 썼다. 그다음 날도. 한 달이 지나자 감사 노트는 페이지가 가득 찼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남편의 무뚝뚝함이 덜 거슬리기 시작했다. 동료의 말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욕심을 내려놓고 원망을 지우고 나니, 비어있는 그 자리에 따뜻한 것들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 삶을 바꾸고 있었다.
그는 평생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기억력도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았고, 말주변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읽은 책 한 구절이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천재의 기억력보다 둔재의 메모가 낫다." 그날부터 그는 작은 수첩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지하철 안에서, 점심을 먹다가, 잠들기 전 침대에서 — 어디서든 생각이 스치면 멈추고 기록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낙서처럼 보였다. "오늘 본 저 할머니의 표정, 슬픔인가 편안함인가." "비 오는 날 빈 벤치가 왜 더 외로워 보일까." 10년이 지났다. 그의 수첩은 어느새 서른 권이 넘었다. 그 메모들 속에서 그는 글을 썼고, 강연을 했으며, 한 권의 책을 출판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나요?" 그는 낡은 수첩 하나를 꺼내 보이며 조용히 웃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의 유배지에서 붓을 놓지 않았듯, 그도 평범한 일상에서 생각을 놓지 않았다. 흐르는 물은 가두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러나 그 물을 담아두는 그릇 하나가 있다면, 언젠가 그것은 세상을 적시는 강이 된다.
어느 조용한 산사(山寺)에 한 노승(老僧)이 살고 있었다. 그는 수십 년을 수행했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하루는 젊은 수행자가 찾아와 물었다. "스님, 제 도반이 어제 저에게 심한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승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느냐?" "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노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말을 한 사람보다 그 말을 붙들고 있는 네가 더 많이 고통받고 있구나." 젊은 수행자는 그 말에 오래 침묵했다. 노승이 이어 말했다. "남의 허물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불씨를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다. 결국 네 손이 타는 것이다. 그리고 남이 너를 욕할 때 네가 끝까지 참을 수 있다면, 너는 그 사람의 말보다 이미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 젊은 수행자는 자신의 허물을 먼저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도반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은 도반
경기도 양주시 옥정신도시 일대에서 진행 중인 대방건설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가 각종 불법과 부실 의혹에 휩싸이며 지역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현장 주변에는 무허가 광고물이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환경·안전 관리 역시 총체적 부실 상태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문제가 된 사업은 옥정 중앙역 인근에 조성 중인 ‘디에트로’ 주상복합 아파트로, 총 3,660세대 규모의 대형 개발 사업이다. 그러나 대규모 사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공사 현장은 기본적인 법규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다. 우선 분양사무실 주변은 사실상 ‘불법 광고물 집합소’로 전락했다. 몽골 텐트 7개, 프랭카드 5곳, 그랜드 오픈 깃발 8개 등 각종 홍보 시설물이 무분별하게 설치돼 있으나, 상당수가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구조물로 확인됐다. 양주시 관계자 역시 “대부분이 불법행위”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속은 사실상 손을 놓은 수준이다. 이미 위법성이 확인된 사안임에도 행정당국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봐주기’ 의혹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공사 현장 자체의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4월 초부터 시작된 공사 과정에서 불법 토사 처리 의혹과 환경 훼손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