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아트 작가, 관계의 불안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법

“시침핀으로 감정을 수놓다”

 

 

[서울] 하얀 갤러리 벽에 형광에 가까운 핑크와 청록, 원색의 블루가 번쩍인다. 커다란 의자 위로 식물들이 자라나고, 다른 한쪽에는 붉은 액자 안 파란 화면 속에서 한 주먹 가득 들꽃이 솟아오른다. 꽃과 잎맥, 경계선 하나하나가 점으로 빚어져 반짝인다. 가까이 다가서면 비밀이 드러난다. 모두 ‘시침핀’이다.

 

작가는 “핀아트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시침핀으로 이루어지는 예술 작업”이라며 “나의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불안 때문에 선택한 소재로, 관계의 불안정성과 그 안에 스며 있는 감정을 핀으로 한 땀 한 땀 새긴다”고 설명했다.

 

‘핀’으로 세운 세계

 

핀아트는 전통 회화의 붓질을 핀의 점묘로 치환한다. 작가는 수천, 수만 개의 시침핀을 캔버스에 박고 배열과 밀도를 조절해 면(面)과 질감을 만든다. 빛을 받으면 핀 머리들이 미세하게 반사돼 화면이 살아 움직인다.

 

최근작에서는 주먹 쥔 손과 야생의 꽃다발을 결합해 억눌림과 회복력을 동시에 상징했다. 화면 하단의 문구와 강렬한 원색 프레임은 동시대 시각문화의 문법을 빌려오되, 내용은 한국 사회의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비튼다. 작가는 “꽃이 예쁘다는 뜻만이 아니다. 불안과 상처를 지나 살아남은 것들의 표정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별한 순간? 작업이 잘 풀릴 때와 막힐 때”

 

그는 드라마틱한 일화를 강조하지 않는다. “성격상 감정을 크게 느끼지 않는 편이라 가장 행복하거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담담히 말한다. 대신 작업실에서의 리듬이 그의 감정을 가른다. “그림이 잘 풀릴 때의 고요한 기쁨, 혹은 막힐 때의 답답함이 내가 아는 가장 가까운 감정”이라는 고백은, 핀 한 개가 화면 위 자리를 찾기까지의 치열한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이력과 현장

 

작가는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와 동 대학 교육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초대개인전 및 개인전 12회, 단체·기획 초대전 115여 회(2000~2024)를 거쳤고, 2013년 국제경기안산아트페어 대상 등 수상 경력 9회를 기록했다.

 

특히 2004년 ‘안양천 프로젝트’는 그가 직접 기획한 첫 공공 프로젝트로, 자연과 도시의 접경에서 관객과 만나는 방식을 탐색한 작업으로 남아 있다.

 

왜 ‘핀’인가

 

시침핀은 원래 임시 고정용 도구다. 작가에게 핀은 붙였다 떼어낼 수 있는 관계의 거리감, 그리고 다시 세울 수 있는 복원력을 상징한다. 금속의 차가움은 화면에서 꽃과 새, 의자 같은 사물의 따뜻한 서사와 만나 역설을 만든다. 핀 머리의 규칙과 일탈, 누적된 수량이 만들어내는 압력은 결국 “관계가 무너질 듯 버텨온 시간”을 가시화한다.

 

보는 사람을 위한 안내

 

이 작품들은 멀리서 형상과 색의 에너지를, 가까이서는 핀의 리듬과 숨을 본다. 화면을 따라가다 보면, 촘촘히 눌린 점들이 어느 순간 한 사람의 호흡으로 겹친다. 관객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는 이유다.


작가 약력(요약)

  •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서양화과 / 동 대학 교육대학원 미술학과 졸업

  • 초대개인전·개인전 12회, 단체·기획 초대전 115여 회(2000~2024)

  • 수상: 2013 국제경기안산아트페어 대상 외 9회

  • 주요 프로젝트: 2004 안양천 프로젝트(공공미술, 자체 기획)

핀 하나로 시작된 점들이 화면을 채우듯, 관계의 불안에서 출발한 그의 서사는 결국 생명과 회복의 무늬로 완성된다. 그것이 핀아트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위로다.

 

 

한국소통투데이 김동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