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산불의 화마, 청송을 삼키다… 삶의 터전 잿더미로

“하룻밤 사이 삶이 사라졌다” – 청송 산불, 대재앙의 흔적
불길에 무너진 고향… 청송 산불 피해 현장을 가다

경북 청송군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이 지역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산간 마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초속 20미터에 달하는 강풍은 수북이 쌓인 낙엽을 불쏘시개 삼아 산과 마을을 태웠고, 소중한 생명과 재산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이번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청송군. 지난 25일 발생한 화재로 9,320ha의 산림이 소실됐으며, 주택 770동과 농가 1,346호, 축산·공공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4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는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현장을 찾았을 때 마주한 광경은 참혹했다. 무너져 내린 지붕 옆으로 검게 그을린 세간과 농기구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실의에 빠진 주민들은 멍한 표정으로 불길에 사라진 전답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삶의 의욕마저 앗아간 이번 산불은 주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불이 난 순간,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주민들은 불길을 피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강풍을 타고 날아다닌 불티는 달리는 차량에도 옮겨붙어 추가 피해를 불렀다.

 

다급히 대피했던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땐,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평생 일궈온 전답과 가축들, 농기구, 씨앗을 보관하던 창고까지 모두 사라졌다. 탄화된 잔해 속에서 가족사진이나 토지 문서를 찾으려 했지만,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관할 행정기관과 소방당국은 총력을 다해 진화에 나섰지만, 강풍을 타고 번진 산불은 순식간에 산과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다. 청송군은 지역 내 34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감염병 예방을 위해 책임 담당자도 지정해 이재민을 돌보고 있다. 현재 112가구, 230여 명의 이재민이 청송국민체육센터와 진보문화체육센터에 분리 수용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도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시는 '사랑의 밥차'를 지원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원불교 봉공회를 비롯한 17개 봉사단체, 꽃동네 자원봉사자 등 200여 명이 구호 활동에 나섰다. 이들의 조용한 헌신은 절망 속에 빠진 이재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80평생 농사짓고 살았는데, 남한테 해 끼친 적도 없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사라진 집터 앞에서 한 주민이 중얼거린 말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이번 화재에선 대피 과정의 혼선으로 희생자가 더 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금 절감한 순간이었다. 산불은 청송 외에도 영양, 산청, 울주, 의성 등으로 번졌고, 정부는 이들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청송군 역시 재난 예비비를 긴급 투입했다.

 

모든 산불은 인위적으로 시작된다. 매년 반복되는 대형 산불을 막기 위해선 산림청, 소방청, 경찰청 간 지휘체계가 명확한 ‘컨트롤 타워’ 구축이 시급하다. 또한, 소방차 진입을 위한 임도 개설, 침엽수와 활엽수가 혼합된 방화림 조성 등 근본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전국 각지의 지원이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하루빨리 피해 주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원한다.